시국이 어지러운 요즘인 만큼 모두의 안부가 각별히 신경 쓰이는 3월입니다. 다들 건강히, 무탈히 잘 지내고 계실까요?
이렇게 여러분의 안부를 여쭙는 저는 지난 12월 초부터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사무국의 입퇴실 담당으로 새로이 합류한 전승우입니다.
문자 그대로 계엄과 함께 상근을 시작하게 된 입장인지라 지금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처음 인사드리는 것이기도 하니 우선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 다다르기까지의 제 이야기를 간단히 풀어놓으려고 해요.
-'주거'와 '공동체', 정신없이 시끄럽고 수없이 즐거웠던 시작
'주거'와 '공동체'가 제 안에서 처음으로 이어진 건 청소년기 끝자락에서 만났을 때의 일이었고, 그때의 경험이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제 관심의 물꼬를 터주었어요. 2009년의 어느 겨울날, 서울의 어느 청소년 인문학 교육 단체가 '사회경제적 제약에서 일부 자유로워진 청소년들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을까'에 관한 공간 실험을 시작하던 와중이었고, 당시 사회운동이 이야기하는 대안적 가치들을 막 접해가며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제게도 그 소식이 들려온 거죠.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경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겼고, 몇 번인가 사무실 겸 공동체 공간으로 쓰이는 방 세 개짜리 집을 드나들다 보니 어느새 서교동 한 켠에서 저처럼 흘러들어왔던 또래들과 같이 먹고 자며 독립인 듯 아닌 듯 애매하지만 즐거운 바깥생활을 일궈내게 됐어요.
바람직한 주거공동체의 모델들이 지금보다는 덜 명확했던 시절이라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온갖 문제를 선례 없이 겪어가며 1년 반 남짓의 시간을 보냈지만, 각자 다른 이유와 배경을 가지고 한 장소에 모여 함께 살게 된 7~8명의 10대 후반~20대 초반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 대화하고, 설득하고, 협의하고, 때로는 싸우는 경험을 통해 홀로 살아가지 않을 때의 즐거움과 든든함을 배워갔던 경험들은 지금의 제가 저로 존재하는 데에 압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종종 기억을 되새길 때면 매번 그리 생각해요. 우리는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공동체를 강렬하게 구성하고자 했고, 그래서 누가 준비해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반상회를 정례화하거나, 생활과 관계에 대한 약속문을 만들거나, 같이 놀거나 공부하거나 여러 사회적 가치가 담긴 활동들에 참여하면서 독특한 만큼 소중한 관계들을 쌓아갔어요. 물론 대부분의 실험이 그렇듯 이 공동체도 차츰 정해진 끝을 향해 달려갔고, 2010년대의 초입을 함께 만들었던 친구들은 이제 각자의 삶 속에서 바쁘게 지내지만, 매일같이 지지고 볶으면서 보냈던 1년 반이 이후에도 우리가 홀로 또 종종 같이 힘내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기틀이 되었다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식당 창고, 반지하, 친구들과의 삶, 그리고 다시 주거공동체로
애시당초 실험이었기에 지속하기 어려웠던 첫 공동체 경험 이후, 지속가능성이 고팠던 저는 꾸준히 사람 사이의 연결과 사는 곳 사이의 연결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을까. 깊어진 고민은 저를 여러 사회운동의 현장으로 이끌었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행복을 안겨줬지만, 불안정한 형태의 일상 역시 따라오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삶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죠. 소득이 일정치 못하거나 적은 돈만을 벌 수 있었던 여러 해 동안에도 다행히 또다른 공동체에 대한 욕심을 놓치지 않았지만, 돈이 많아야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저는 여러 번 위험하거나 불안한 주거지들로 반복해서 미끄러져 들어갔어요. 명동의 식당 창고에서 두어 달, 지인 집을 전전하며 서너 달, 결국 물난리로 이사하게 된 반지하에서의 1년…. 그 사이에 친구들 몇몇과 뜻을 모아 함께 2년여를 살기도 했고, 간병하러 들어갔던 집에서 오래 머물기도 하며 잠깐의 안정을 추구하다가도 결국 다시 떠도는 삶으로 재진입하는 악순환에 지쳐갈 때쯤, 대학 비진학자에게 더 유리한 심사 과정을 운영하는 사회주택이 있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왔어요. 더 약한 사람들끼리 함께 사는 삶의 바람직한 모델을 추구한다는 설명이 다시금 주거공동체를 향한 관심에 불을 세게 지폈고, 그렇게 지원해 들어간 사회주택에서 여지껏 이웃들과의 관계를 또 고민하면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주거권, 대안, 그리고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주거와 공동체에 대한 여러 고민을 10여 년간 불려왔던 만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과 민달팽이유니온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들어 알고는 있었어요. 하지만 어쩐지 단순히 아는 것 이상으로 더 가까워지기는 어려워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문득 주거권과 대안적인 주거 모델을 나의 중심에 놓고 고민을 이어가는 편이 스스로 항상 중요하게 여겨왔던 가치를 구체적으로 삶 속에 끌어들이는 최선의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부터 지속가능한 주거, 지속가능한 공동체에 대한 여러 활동 옆에서 기웃거리던 몇 년이 있었고, 운 좋게도 작년에 기회가 닿아 이제는 관심과 욕심을 업무의 영역에서도 다루게 됐네요. 새로운 일을 배워가며 익숙해지는 과정은 매번 어렵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금씩 두근거리는 마음이 커지기도 해요.
다소 두서없는 서술이라 뒷목이 살짝 간지럽지만, 오늘의 제가 여러분께 이 글을 드리기까지 어떤 경험들을 경유해왔는지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다음에 만날 때는 더 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길 기대하며, 반갑습니다!
시국이 어지러운 요즘인 만큼 모두의 안부가 각별히 신경 쓰이는 3월입니다. 다들 건강히, 무탈히 잘 지내고 계실까요?
이렇게 여러분의 안부를 여쭙는 저는 지난 12월 초부터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사무국의 입퇴실 담당으로 새로이 합류한 전승우입니다.
문자 그대로 계엄과 함께 상근을 시작하게 된 입장인지라 지금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처음 인사드리는 것이기도 하니 우선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 다다르기까지의 제 이야기를 간단히 풀어놓으려고 해요.
-'주거'와 '공동체', 정신없이 시끄럽고 수없이 즐거웠던 시작
'주거'와 '공동체'가 제 안에서 처음으로 이어진 건 청소년기 끝자락에서 만났을 때의 일이었고, 그때의 경험이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제 관심의 물꼬를 터주었어요. 2009년의 어느 겨울날, 서울의 어느 청소년 인문학 교육 단체가 '사회경제적 제약에서 일부 자유로워진 청소년들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을까'에 관한 공간 실험을 시작하던 와중이었고, 당시 사회운동이 이야기하는 대안적 가치들을 막 접해가며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제게도 그 소식이 들려온 거죠.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경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겼고, 몇 번인가 사무실 겸 공동체 공간으로 쓰이는 방 세 개짜리 집을 드나들다 보니 어느새 서교동 한 켠에서 저처럼 흘러들어왔던 또래들과 같이 먹고 자며 독립인 듯 아닌 듯 애매하지만 즐거운 바깥생활을 일궈내게 됐어요.
바람직한 주거공동체의 모델들이 지금보다는 덜 명확했던 시절이라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온갖 문제를 선례 없이 겪어가며 1년 반 남짓의 시간을 보냈지만, 각자 다른 이유와 배경을 가지고 한 장소에 모여 함께 살게 된 7~8명의 10대 후반~20대 초반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 대화하고, 설득하고, 협의하고, 때로는 싸우는 경험을 통해 홀로 살아가지 않을 때의 즐거움과 든든함을 배워갔던 경험들은 지금의 제가 저로 존재하는 데에 압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종종 기억을 되새길 때면 매번 그리 생각해요. 우리는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공동체를 강렬하게 구성하고자 했고, 그래서 누가 준비해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반상회를 정례화하거나, 생활과 관계에 대한 약속문을 만들거나, 같이 놀거나 공부하거나 여러 사회적 가치가 담긴 활동들에 참여하면서 독특한 만큼 소중한 관계들을 쌓아갔어요. 물론 대부분의 실험이 그렇듯 이 공동체도 차츰 정해진 끝을 향해 달려갔고, 2010년대의 초입을 함께 만들었던 친구들은 이제 각자의 삶 속에서 바쁘게 지내지만, 매일같이 지지고 볶으면서 보냈던 1년 반이 이후에도 우리가 홀로 또 종종 같이 힘내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기틀이 되었다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식당 창고, 반지하, 친구들과의 삶, 그리고 다시 주거공동체로
애시당초 실험이었기에 지속하기 어려웠던 첫 공동체 경험 이후, 지속가능성이 고팠던 저는 꾸준히 사람 사이의 연결과 사는 곳 사이의 연결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을까. 깊어진 고민은 저를 여러 사회운동의 현장으로 이끌었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행복을 안겨줬지만, 불안정한 형태의 일상 역시 따라오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삶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죠. 소득이 일정치 못하거나 적은 돈만을 벌 수 있었던 여러 해 동안에도 다행히 또다른 공동체에 대한 욕심을 놓치지 않았지만, 돈이 많아야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저는 여러 번 위험하거나 불안한 주거지들로 반복해서 미끄러져 들어갔어요. 명동의 식당 창고에서 두어 달, 지인 집을 전전하며 서너 달, 결국 물난리로 이사하게 된 반지하에서의 1년…. 그 사이에 친구들 몇몇과 뜻을 모아 함께 2년여를 살기도 했고, 간병하러 들어갔던 집에서 오래 머물기도 하며 잠깐의 안정을 추구하다가도 결국 다시 떠도는 삶으로 재진입하는 악순환에 지쳐갈 때쯤, 대학 비진학자에게 더 유리한 심사 과정을 운영하는 사회주택이 있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왔어요. 더 약한 사람들끼리 함께 사는 삶의 바람직한 모델을 추구한다는 설명이 다시금 주거공동체를 향한 관심에 불을 세게 지폈고, 그렇게 지원해 들어간 사회주택에서 여지껏 이웃들과의 관계를 또 고민하면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주거권, 대안, 그리고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주거와 공동체에 대한 여러 고민을 10여 년간 불려왔던 만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과 민달팽이유니온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들어 알고는 있었어요. 하지만 어쩐지 단순히 아는 것 이상으로 더 가까워지기는 어려워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문득 주거권과 대안적인 주거 모델을 나의 중심에 놓고 고민을 이어가는 편이 스스로 항상 중요하게 여겨왔던 가치를 구체적으로 삶 속에 끌어들이는 최선의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부터 지속가능한 주거, 지속가능한 공동체에 대한 여러 활동 옆에서 기웃거리던 몇 년이 있었고, 운 좋게도 작년에 기회가 닿아 이제는 관심과 욕심을 업무의 영역에서도 다루게 됐네요. 새로운 일을 배워가며 익숙해지는 과정은 매번 어렵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금씩 두근거리는 마음이 커지기도 해요.
다소 두서없는 서술이라 뒷목이 살짝 간지럽지만, 오늘의 제가 여러분께 이 글을 드리기까지 어떤 경험들을 경유해왔는지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다음에 만날 때는 더 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길 기대하며, 반갑습니다!